‘재일디아스포라 문학선집’ 출간 기사

작성자
일본학연구소
작성일
2018-04-27 12:50
조회
361













恨 서린 이방인의 삶, 문학으로 꽃피우다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선집’ 출간




입력 : 2018-04-26 21:12:10      수정 : 2018-04-26 21:12:10





디아스포라, 이산(離散)의 삶은 현대사의 굴절이 빚어낸 산물이다. 자주적인 근대화에 실패해 식민지 시절을 겪어야 했고 다시 분단의 질곡 속에 살아온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는 그 의미가 더 각별하다. 일본에서 한글로 혹은 일본어로 디아스포라의 삶과 역사를 문학으로 담아낸 조선인들의 문학작품을 선별해 국내에 소개한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선집’(전5권, 소명출판)을 톺아보는 배경이다. 이 선집에는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재일 조선문학인들의 시와 소설은 물론 평론과 연구 작업들까지 망라돼 있다. 한반도, 그중에서도 분단된 반쪽인 남쪽 한국문학만으로는 채우지 못하는 부족한 면들을 국외에서 기록하고 묘사하면서 주변이 중심을 자극하는 양상이다.
김석범
이회성
이우환
“돼지우리 같은 오사카 한 모퉁이에서/ 에이헤이요 라고/ 도라지타령 한 구절이라도 부르면/ 시나브로 쿨렁쿨렁 눈물이 솟아오른다// 잊지 못한다/ 그 노래를 좋아하시던 아버지/ 쓰레기를 줍고 고물을 찾으러 다니다/ 막걸리라도 한 잔 마시면/ 아버지는 자주 이 도라지 노래를 불렀다// 소리도 나지 않는 쓰레기통을/ 두드리며 노래 부르고 두드리며 울고/ 어린 내가 조르면/ 괜히 고함만 치시던 아버지/ 그것은 분명 외로움 탓이었으리라// 도라지 도라지 하고 노래를 부르실까/ 아리랑 아리랑 하고 노래를 부르실까/ 탄광에서 죽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감자처럼 타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에이헤이요 라고 노래를 불러볼까”

김시종 시인이 집필한 ‘유랑민의 애가’ 한 대목이다.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그는 일본 최초로 공립고교 조선인 교사가 되어 정규과목으로 조선어를 가르치면서 작품활동을 벌였다. 고향 생각을 하며 막걸리라도 한 잔 마시면 저절로 도라지타령이 입에서 흘러나오던 아버지를 회상한다.
허남기
김시종
1951년 일본에서 출생한 재일 2세대 조선인 김리자는 “아버지의 고향에/ 북도 남도 없었던 시절을 난 모른다”면서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고향은/ 항상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썼다. 분단 후 타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분단되지 않았던 아버지의 고향을 아버지의 슬픈 노래 속에서만 상상할 수 있다. 1918년 경상남도에서 출생해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초급학교 교장과 재일 조선문학예술가동맹 위원장을 역임한 허남기 시인에게도 고향은 어김없이 노래 속에 떠오른다.

“귀를 기울이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깊은 밤/ 잠에서 깨어 귀를 기울이면/ 아득히 머나먼 구름 위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소리도 없이 창을 열고/ 장지를 열어/ 내 가슴의 단추를 부서뜨리고/ 심장 한 구석에서 메아리친다/ 그리고 눈꺼풀 위에 작은 이슬을 남기고 사라져간다// …// 내 고향의 산이 노래하고/ 내 고향의 강이 노래하며// 그리고 저 많은 슬픈 마을 사람들이 노래하고/ 그리고 저 많은 슬픈 역사가 노래하는/ 오랜 세월을/ 어둡고 추운 밤 속에서 지내다/ 오늘 또 어둠 속에 쫓겨 온/ 조선의 흙이 노래하는 노랫소리임에 틀림없다”(‘한밤중의 노랫소리’)
양석일
김사량
이수경
경기 강화 출생으로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간 강순(1918~1987)에게 고향은 ‘한글’이기도 하다. 그는 “열 개의 모음에/ 열네 개의 얼굴을 가진 자음들/ 모음은 몸채에 계시는 어머니 되는 소리/ 저녁 마당에 뛰노는 자음들/ 자애로운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왁자지껄하며 돌아오는 많은 형제들”이라고 모국어를 기렸다. 시 선집에는 1세대는 물론 모던한 시풍으로 지금 그곳의 삶을 담은 3세대들까지 포함한 43명의 작품이 수록됐다.

소설 선집은 김사량 김석범 이회성 김태생 양석일 등 일본에서 활발하게 중요한 작품들을 생산해온 재일 소설가 19명의 단편들을 뽑아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했다. 재일 조선인문학 선두 그룹인 김사량(1914~1950)의 단편 ‘Q백작’을 첫머리에 수록했다. 이 단편에는 부산에서 만주 창춘까지 가는 열차에 탄, ‘저주스런 풍수해로 전답과 집이 쓸려나간 농민들이 다시금 새로운 광명을 찾아 먼 광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풍경이 핍진하게 담겨 한국문학이 기록하지 못한 세목들을 보충해 준다.

김환기(54)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소장은 이 선집을 편역한 ‘재일디아스포라 문학의 글로컬리즘과 문화정치학연구팀’(김환기 유임하 이한정 김학동 신승모 이승진 한성례 한해윤 방윤제)을 대표하여 “재일디아스포라는 탈식민 이후 모국의 분단을 착잡하게 지켜보는 고립된 복수형 존재에서 다시 남북분단을 넘어 동아시아적 가치를 되살릴 자격을 가진 저항적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국민국가의 경계를 허물며 가장 구체적이고 이질적인 방식으로 민족과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된다”고 강조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